카테고리: 인터뷰 Interview

“누가 대통령 되더라도 트럼프와는 쉽지 않을 것”

“누가 대통령 되더라도 트럼프와는 쉽지 않을 것”

<인터뷰>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前) 미 국무부 한국과장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베트남전 에이전트 오렌지 피해 소송, 주한미군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 화성 매향리 사격장 오폭 사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협상, 여중생 신효순·심미선 사망 사건, 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안톤 오노의 반칙 사건 등을 기억하는가. 모두 국내에서 반미 열풍을 촉발한 굵직굵직한 사건이다.

윌리엄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APARC) 한국학 부소장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주한 미 대사관 공사 참사관으로 재임하고, 2002년부터 2년간 미 국무부 한국과장을 역임하며 최고조로 치솟았던 한국인의 반미 감정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이후 10여 년이 지난 2015년 한국인의 ‘반미 감정’에 대해 미국인의 시선으로 다각도로 짚어보고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를 썼다. 이 책은 최근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김수빈 옮김, 산처럼).

최근 세종연구소는 ‘세종-LS 펠로우십’을 신설했다. ‘세종-LS 석좌’ 객원연구위원으로 초빙된 그를 3월 24일, 촛불의 물결이 일렁이던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광장에서는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이 많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이제라도 인양이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참하게 아이를 잃은 부모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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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3/all/20170329/83583062/1#csidx4be4ed54732afa58c39fc8fa6ab6014

프리미엄 BJ 쇼 ‘어쩌다 BJ’ : 크리에이터 양띵 편

프리미엄 BJ 쇼 ‘어쩌다 BJ’ : 크리에이터 양띵 편

초등학생들의 희망 직종으로 급부상한 BJ(Broadcasting Jockey). 놀면서 돈도 벌 수 있어서 인기라고요? 천만의 말씀. BJ라는 직업이 생소하던 시절부터 활동해 정상에 우뚝 선 BJ와 크리에이터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프리미엄 BJ 쇼 ‘어쩌다 BJ’에서 만나보세요. 오늘은 일명 ‘초통령’이자 콘텐츠의 여왕으로 불리며 유튜브 누적 조회수 10억 뷰 이상을 자랑하는 트레저헌터 소속 크리에이터 겸 이사 양띵(본명 양지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2007년 처음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양띵 씨에게는 방송 11년째인 올해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취재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제작 김남준 PD kimnj@donga.com


http://news.donga.com/3/all/20170306/83187657/1#csidxe3776971a87f266857c9c0c82f45781

‘자살 검사’ 父 단독 인터뷰 “아들이 늘 자랑스러웠다”

‘자살 검사’ 父 단독 인터뷰 “아들이 늘 자랑스러웠다”

“죽기 살기로 진상 밝혀내겠다”
“우리 아들 잘 살다 갔구나…”

‘착하면 손해 보는 사회.’ 우리 사회를 자조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5월 19일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형사2부 소속 김홍영(33) 검사의 사건을 보면 슬프게도 이 말이 맞는가 싶어 가슴이 답답해진다.

2년 차 젊은 검사의 죽음을 두고 사건 초기에는 업무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후 유족이 대검찰청과 청와대에 탄원서를 내면서 상사의 폭언과 폭행이 있었다고 주장해 논란이 커졌다.

책임감 있는 검사이자 후배를 위할 줄 아는 선배, 멋진 아들이던 그가 고민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몇몇은 그의 죽음을 두고 “너무 착해서 상사에게 분노를 표출하기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쪽을 택한 게 아닐까”라며 안타까워했다.

6월 초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해당 사건에 대해 서울남부지검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7월 2일부터는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나섰다. 사건이 발생한 지 40여 일이 지나서야 시작된 ‘뒷북’ 조사다.

7월 6일 김 검사의 49재가 부산 만덕사에서 엄수됐다. 김 검사의 아버지 김진태 씨와 연락이 닿은 건 49재 다음 날인 7월 7일. 수화기 너머 아버지 김씨의 목소리는 마른 잎처럼 버석거렸다. 전날 내내 오열한 터라 목은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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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List/3/89/20160707/79078714/1#csidxc1b5c37d9dcfe68a07ed4ae49834aa9